전두환은 광주폭동이 일어난지 모르고 있었다. 기타 지도자들

1996년 5.18특검 때 김영삼 문민독재정권의 정치 검찰은 아주 초조했었다. 대통령이 위헌까지 해가며 5.18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석달간 광주에서 조사해도 전두환 당시 육군소장과 5.18 폭동진압 작전에 티끝만한 관계라도 있다는 단서마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두환이 광주사태에 관하여 한 단 한마디 말은 "광주사태가 일어난지도 모르고 있었다"였으며, 검찰도 광주사람 정웅 장군이 단독으로 작전 명령을 내렸던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1980년 5월18일 아침은 여느 봄날의 휴일처럼 무등산에서 떠오른 봄날의 햇살이 光州를 따스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시민들은 17일밤 일어난 일련의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채 휴일의 노곤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5월 18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그날의 전남일보 기사를 읽어 보자. 계엄확대조치와 함께 풀가동된 당시 全南日報 사회부 기자들이 작성했던 18일 아침 光州시 내 각 대학정문 동정은 다음과 같다:

<정문앞에는 [정부조치로 휴교령이 내렸으니 가정학습하기 바란다]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全南大정문에서 약 30m 떨어진 용봉교를 사이에 두고 학생과 공수부대 원들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학생들이 다리 를 넘어서면서 공수부대원들이 나와 밀어내는 대치상황이 한참 계속됐다. 군의 첫경고 방송이 나오지만 학생들의 구호소리가 높아져갔다. 일부학생들 은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소령 계급장을 단 장교가 마이크를 들고 앞에 나섰다. [우리는 상부 지시로 全南大에 왔다. 대학은 휴교령이 내려졌다. 즉시 귀 가하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해산시키겠다] 장교의 말이 끝나자 정문양편으 로 공수부대원 4명씩이 2열 종대로 대열을 이뤘다. 학생들이 돌을 던졌으나 공수부대원들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아침 10시부터 10시 30분 사이에 벌어진 일]

5-6차례의 공방전을 치른 학생들은 오전 11시께 당시 중흥동 사레지오 고교 앞에 모여 토론을 벌였는데, 이때 학생들의 숫자는 약 3백여명으로 불어났다. 스크 럼을 짠 학생들은 [全斗煥 물러가라] [계엄령을 해제하라] [金大中을 석방하라]며 光州시내로 내달렸다. (
http://blog.daum.net/sionvoice/442202 ) >

소령 계급장을 단 장교가 마이크를 들고 앞에 나섰다. [우리는 상부 지시로 全南大에 왔다. 대학은 휴교령이 내려졌다. 즉시 귀 가하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해산시키겠다] 장교의 말이 끝나자 정문양편으 로 공수부대원 4명씩이 2열 종대로 대열을 이뤘다. 학생들이 돌을 던졌으나 공수부대원들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아침 10시부터 10시 3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4명씩 2열 종대"가 김대중 홍위병들 눈에는 한국군 전체로 보이는가? 그리고 "학생들이 돌을 던졌으나 공수부대원들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가 픽션 소설가 한홍구 눈에는 광주학살로 보이는가? 그럼에도 바로 그 시간에 전국에 광주 학살 삐라가 뿌려졌으며, 국민은 속았던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국민을 속였다. 이것이 그날 전국에 퍼졌던 광주학살 유언비어의 진실이었다.

그때 전국에 유포된 유언비어는 "400만 전라도민 학살 명령을 받은 공수부대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에게 사격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보세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격합니까? 그리고, "공수부대원 4명씩이 2열 종대로 대열을 이뤘다. 학생들이 돌을 던졌으나 공수부대원들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가 광주 학살인가?

따라서, "5월 18일에 전두환이 400만 전라도민 학살 명령을 내렸다"는 대자보를 전국에 유포하였던 당시 운동권을 그들의 거짓말에 대한 설명을 국민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그들에게 속아야 하는가? 그들이 누구이기에 국민을 속이는가? 그리고 그때 그런 유언비어로 25년간 국민을 속이고 한 인격에 가혹한 누명을 씌웠던 운동권은 이제라도 그분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벗겨 드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나중에 증명되었듯이 5월 18일에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그럼에도 윤상원은 광주학살 유언비어를 녹두서점 전화를 통해 전국에 퍼뜨렸으며, 한홍구 등으로 구성된 당시 서울대 3학년 유언비어 제조기들은 그 유언비어를 다시 확대 생산하여 대자보로 전국 대학에 퍼뜨렸다. 아무도 다치거나 죽임을 당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유언비어에 속아 흥분한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을 형성하여 세무소에 불을 지르고, 파출서를 파괴하고 순경을 보는 대로 잡아다가 개패듯 패므로 마침내 오후 5시 40분에 정말로 광주사람 정웅 소장이 광주향토사 소속 공수부대에 폭동진압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그날 오후 5시 40분 이전에 광주 학살이 있었다는 유언비어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이다. 지금껏 국민이 그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고 있다. 그날 광주시민들도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고 유언비어에 속아 세무소에 불을 지르고, 버스로 순경들을 깔아죽이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했으니 타지역 사람들이 그 유언비어에 속아넘어간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아직 그 유언비어가 증언이나 증거로 입증된 예는 단 하나도 없다.

그날 광주에는 두가지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었다. 한가지 유언비어는 거사에 성공하면 김대중 선생이 협력자들에게 군수 자리를 준다는 유언비어요, 다른 하나는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400만 전라도민 학살 명령을 내려 학살극이 자행되고 있다"는 유언비어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주 시민들에게 천리안이 있어서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그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의 전두환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인 광주 시민군이 공공건물에 방화하며 순경들 집에까지 찾아가 붙잡아 와서 몰매를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광주 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의 요청으로 광주 사람 정웅 소장이 광주향토사단 공수부대에 폭동진압명령을 내렸으나 전두환은 알리 만무하였다.

당시 전두환은 4월 30일에 갓 중정 서리로 임명받았던 때였다. 말이 중정이지 황폐한 중정이었다. 김재규는 군부와 정부 양편에서 실세였기에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 부하들이 김재규의 쿠데타를 돕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보부를 눌러야 했기에 산산조각이 나있던 부서였다. 이 부서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전듀환은 새 업무를 익혀야 했다. 그러나 중정에서 광주의 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리 없었다.

같은 소장이라도 전두환에 비해 광주사람 정웅 소장은 한국군에서 가장 군번이 빠른 편에 속한 장성이었다. 주영복 국방장관 외에 아무도 감히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으며, 정웅 소장도 "내가 강경 진압으로 광주에서 일을 저지를 것이다"라고 후배 전두환에게 알려 주었을리 만무하다. 심지어 육본의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조차 그는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말하자면, 그는 군번으로 군 최고 어른으로서 지방 황제 노릇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단독으로 일을 저지르면서 타 지휘관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광주사태 문제가 5월 19일부터는 육본에서 관심을 가지는 문제가 되었으나, 육본이 광주사태에 대한 정보를 중정과 공유하였을리도 만무하였다. 광주사태 문제가 본래 내무부 문제였으나, 내무부 역시 최규하 대통령에게만 보고하였을 뿐 중정과 연락이 없었다. 결국 전두환은 5월 26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하기 하루이틀 전에서야 광주 사태 정보에 접하기 시작하였던 듯하다. 따라서, 광주사태가 일어난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다. 이것은 중정 서리가 인정하기 부끄러운 사실이나, 또한 정직한 사실이기도 하다. 전두환은 광주사태가 일어난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광주폭동 주동자들과 서울대 3학년 유언비어 제조기들이 "전두환이 400만 전라도민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전국에 유포하고 있었지만 전두환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전남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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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4/07 16: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백범 2011/04/07 18:38 #

    그놈도 거기서 받았었군요. 그런 일이...
  • 닛뽀리 2011/04/07 20:48 # 삭제 답글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사람으로서 ..잠시나마 운동권에도 기웃거려 보았던 한사람으로서...지금은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주사파잔당들의 종북이적질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양심을 걸고 이야기 하자면 ..5월18일 공수부대의 강경 진압이 있었던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 입니다.18일의 유혈진압..그리고 19일의 유혈진압이 광주사태의 원인이라고 보는것이 객관적인 시각 입니다. 좌파들이 떠들어 대는 무슨 통일이나 민족이나 혁명따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고 ..일부 보수쪽 사람들이 말하는 폭동이라는 성격규정도 잘못된 것 입니다.
    광주사태는 18일 19일의 유혈진압에 의해 촉발된 시민저항운동이었다..라고 보아야 합니다.

    18일,19일의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할까..공수부대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국군에 의해 ..광주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무차별적으로 ..유혈 폭력을 받았다고 하는..살상행위라고 표현되어져도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전대 정문앞에서 학생들과의 대치상황이 있었고 ..학생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민가에 까지 뛰어들어 곤봉으로 무차별적으로 구타하였고..시위와는 무관한 젊은사람들을 구타하였습니다. 선혈이 낭자하였어요. 저도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보았으니까요..이후 금남로에서는 더욱 비참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카톨릭센터 앞..그리고 5가쪽에서 가까운 당시 공용터미널등의 상황 말이지요.자상환자도 발생하였지요.18일,19일 양일간 광주시민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습니다.오직 공포뿐이었지요. 31사단장 정웅씨가 공수부대원들에게 진압명령을 내렸다..라고 하지만 ..당시 특전사가 공식적인 명령체계를 따르지 않았다고 하는것도 청문회를 통해서 다 밝혀졌지요.정웅씨보다는 전교사 사령관이었던 윤흥정씨가 당시 쓰리스타였고 호남지역 계엄의 장(계엄분소장)이었기 때문에 명령계통에 있었지요.정웅씨는 18일 19일 상황을 보고 받고 ..또 신부나 목사 지인들로 부터 상황을 전해듣고는 이러다 큰일난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것도 여러매체들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전라도 사람 정웅씨를 광주강경진압의 책임자로 몰아가는 것은 좌파나 보수를 떠나서 아주 잘못된 것 입니다.
    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치졸한 수단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광주지역에서의 유언비어 확산은 19일 오후부터..본격적으로는 20일부터 퍼져나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상도 군인만 뽑아서 왔다..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다 죽이려 한다...이겁니다.
    이것은 당시 광주의 공무원들..그리고 경찰관들이 .공수부대원들에게 부상이 심각한 시민들을 피범벅이 된체로 무리하게 트럭에 실고 연행해가지 말고 우선 치료부터 시켜야한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공수부대원들의 일부가 경상도 말로 대응을 하는것을 지켜본 시민들에 의해 급격하게 퍼져나간겁니다.

    18일 19일 아주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음에도 사실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은 학생들을 숨겨주는것외에도 ..군인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태의 진정을 바랐던거지요.

    그런데 그만 이런 상황이 20일 21일 더욱 악화되고 말았지요.
    광주시민들 대다수가 결국 대한민국의 공권력에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광주는 당시만해도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가 극소수였습니다.
    한집건너 한집이 다 아는 사이라는 뜻이지요.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직간접으로 "나"와 연관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광주의 경찰관들이 시민들로 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것도 ..있었을수는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사태 초기부터 경찰관들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쪽이었기 때문이지요.
    오죽하면 당시 터미널앞의 대인동 파출소 경찰관들은 공수부대원들과 충돌까지 했을정도니까요.
    당시 파출소 소장의 명령으로 파출소로 연행되어온 모든 학생들 시민들을 우선 근처 병원으로 옮길려고 했기 때문에 무조건 연행하려던 공수부대 장교들과 언쟁을 하고 멱살을 잡는일까지 벌어졌었지요.

    광주사태는 12.12 쿠테타로 군을 장악한 신군부가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씨 묶어놓고 계엄 전국확대하고 ..이런 수순으로 권력을 잡기위한 과정에서 ..돌발적인 폭력유혈진압을 통해 발생한 민족사의 비극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에는 좌의 시각도 우의 시각도 필요없어요.

    참고로..광주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플랭카드는 ""김일성은 오판말라" 였습니다.

  • 백범 2011/04/07 20:53 #

    1
    영삼, 대중, 종필 이놈들 묶어놓기 전에 5월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역에서 대학생 15~20만 명 정도가 상가 파괴하고 난동부리고 약탈하다가, 경찰뜬다는 소식 듣고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17일의 비상계엄의 원인은 학생운동권에서 먼저 만든걸로 압니다만...


    2
    3공수여단,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그리고 계엄군으로 파견된 31사단, 32사단...

    1개 중대도 아니고 1개 여단, 사단 병력이 어떻게 전부 경상도 사람으로 차출이 됩니까? 1개 중대에서도 같은 도 출신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중대도 아니고 사단, 여단이 전부 경상도놈들이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당시 계엄군이 대검으로 임산부 배를 갈랐다, 계엄군이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루머도 있는데, 아니 어떤 정신나간 또라이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합니까?

    계엄군이 사람고기를 뜯어먹었다는 유언비어도 있었는데, 문명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군인이 식인종이라는게 말이 안됩니다. 그 사람고기를 뜯어먹은 계엄군인지 공수인지는 누구였던가요?

    대체 그런 얘기들은 사실여부도 확인 안됐고, 누가 지어냈는지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네요.
  • 닛뽀리 2011/04/07 21:06 # 삭제 답글

    1.15일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면 ..뭐 17일 계엄 전국확대따위는 필요가 없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2. 그러니까 유언비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유언비어가 확산된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맞습니다. 그런 유언비어가 있었어요..임산부 배를 갈랐다..말이지요..이것은 전대정문앞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고 사망한 임산부의 정황에서 증폭된것이지요. 사실 그 현장이야...비참했겠지요..그것을 보고 ..계엄군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따위의 유언비어가 확산되어갔겠지요. 여고생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유언비어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중앙여고앞에서 학생들의 시내진출을 막으려는 교사들과 계엄군들이 충돌이 있었고..일부 여고생들이 계엄군들로 부터 폭행을 당했는데..당시 여고생들의 하얀 하복 교복 상위가 피로 물들었으니 또 그것을 보고 젖가슴을 도려내였다..따위의 유언비어가 확산되어갔겠지요...모두 유언비어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이런 유언비어가 광주사태의 발생 원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발생원인은 18일 19일의 유혈진압에 있어요.

    광주사태의 발생원인이 ...계엄군의 유혈폭력진압에 있다..라고 하는것까지 부정해버리면 ..결국 종북좌꼴들이 떠들어대는 ...이른바 광주민중항쟁은 민족통일을 위한 혁명이었다...의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 백범 2011/04/07 21:13 #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야 했다는 이유때문에 군대에 억지로 끌려가야 했던 아들들을 졸지에 사람고기를 뜯어먹은 인간으로 만드는 그 뻔뻔함에서는 입을 다물수가 없네요.

    그리고...

    김대중이 폭동전날 이런자들하고는 타협할수 없다 라고 했다는데, 그뒤에 김대중 어떻게 했나요? 김대중이 전두환한테 반성문을 여러장 보낸 사실이라던가,

    뒤에 대중이가 전두환, 노태우한테 정치자금 받았다는 건 아시는지? 그얘기 나오니까 겨우 노태우에게 1차례 받은 20억만 시인했지만, 나머지 의혹은 한마디도 안꺼냈더군요.
  • 백범 2011/04/07 21:18 #

    이런놈들하고 타협못하겠다면서, 반성문은 어떻게 보낼수 있었고, 용돈은 어떻게 받아챙길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자신을 추종하는 시민들의 피묻은 돈인데...
  • 닛뽀리 2011/04/07 21:14 # 삭제 답글

    참고로 한가지 부언한다면...계엄군이 사람 고기를 뜯어먹었다..라는 유언비어는 당시도 ..지금도 금시초문입니다.
  • 백범 2011/04/07 21:20 #

    그럼 전두환이 지었을까요? 아니면 하늘에서 뚝떨어진걸까요?

    그리고... 그때 비밀리에 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원들의 존재도 혹시 부정하시고 싶으신것인지???
  • 닛뽀리 2011/04/07 21:28 # 삭제

    글쎄요..전두환이 지어낸것인지..아니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인지..
    아무튼 당시에도 지금에도 ..비교적 관심있게 광주사태를 보고 있지만 ...계엄군이 사람고리를 뜯어먹었다..라는 유언비어는 당시에도 들어본적이 없고..지금까지도 들어본적이 없군요.
    오늘..새롭게 백범님으로 부터 그런 유언비어도 있었다..라는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늘 백범님으로 부터 이 새로운 유언비어에 대해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 백범 2011/04/07 21:35 #

    아이고... 오늘 처음 들은것처럼 날조하시네요. 폭동때 돌던 루머들 인터넷에 다 돌고 있거든요.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 닛뽀리 2011/04/07 21:41 # 삭제

    그런 유언비어는 당시도 지금까지도..들어본적이 없다..라는것이 어떻게 날조로 되는 것 입니까?
    들어본적이 없는 유언비어를...들어본적이 있다..라고 해야 날조가 아닌겁니까?
    인터넷에 돌고 있으니까 그것이 절대적인것이다...라는것도 사실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사람으로서..양심을 걸고 이야기 하지만 ...그런 유언비어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오늘..백범님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들어본적이 없는 유언비어를 들어본적이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것이 "날조"로 된다고 하는 것도 백범님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덧붙이지지만....저는 백범님과 무슨 말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고 싶습니다.
  • 닛뽀리 2011/04/07 21:17 # 삭제 답글

    김대중이 계엄의 전국확대 이전에 이런자들하고는 타협할수 없다..라는 발언과 광주사태의 발생원인에 어떤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는것인지 궁금하군요.
    미국으로 가기위해 전두환한테 반성문 보냈다는것도 말이지요.
    뒤에 대중이가 전두환 노태우한테 정치자금 받았다는것도 광주사태의 발생원인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사족을 붙인다면 개인적으로 김대중씨나 김영삼씨나 김종필씨나 모두 구정치인..수구부패의 원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백범 2011/04/07 21:19 #

    김대중 문제라...

    김대중이 이런자들하고는 타협할수 없다.. 라는 발언을 한게 사태확대에 정말 아무관련이 없다고 보시는지?

    이런자들하고는 타협할수 없다.. 면서 어떻게 반성문을 공개적으로 세 통이나 보낼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자들하고는 타협할수 없다.. 면서 그 이런자들한테 수십억의 용돈을 받는건 어떤 의도인지???
  • 닛뽀리 2011/04/07 21:20 # 삭제 답글

    건방지고 무례하게 한가지를 덧붙인다면...백범씨께서는 "전두환은 광주폭동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있었다" 라는 스레를 올릴것이 아니라..."광주사태는 좌꼴들이 떠들어대고 선전선동해대는 공산혁명도..민족통일혁명도 아니었다" 라는 스레를 올려보기를 기대해봅니다.
  • 백범 2011/04/07 21:24 #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도 아니고, 참모총장도 아닌 보안사령관(연대나 대대의 정작과장 정도)이었습니다. 육군본부 참모총장 예하의 참모부서장인 전두환이 무슨수로 계엄사령관인 이희성 중장에게 진압명령을 하달할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 닛뽀리 2011/04/07 21:32 # 삭제

    보안사령관이었고..중앙정보부장이었고..12.12로 군을 장악한 실세였지요..진압명령이 아니라..그런 유혈사태를 불러온 강경진압이 누구로 부터의 명령에 의한것인가...하는것은 어쩌면 영원히 알수 없겠지요...어느 누구도 그런 비극적인 유혈사태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테니까요. 단지..공수부대원들이 그렇게 훈련되어졌다는것만 분명할뿐..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이 8일간 광주에 체류하였다고 하는것도 사실로 남아있습니다.
  • 백범 2011/04/07 21:44 #

    구체적인 물증이 없는 한, 단지 정호용이 머물렀다 해서 전두환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근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 닛뽀리 2011/04/07 21:50 # 삭제

    전두환이 그런 유혈강경진압의 명령을 내렸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그런 비극적인 유혈사태를 목적으로한 강경진압의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을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 되어져야 할것은...당시 군부의 실세였던 전두환과 ..그런 전두환과 쿠테타를 함께했던 정호영 특전사령관이 당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는것은 생각할수 없다..라는 것 아닐까요?

  • 백범 2011/04/07 21:56 #

    그런데 어떻게 전두환은 광주학살자,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죽이자

    이런 소리들까지 난무했던 것이지요???
  • 닛뽀리 2011/04/07 22:15 # 삭제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씨가 연행되고 계엄의 전국확대가 실시되었으니...전두환이 물러가라..훌라훌라...구호가 등장했던 것이겠지요.

    당시 신군부..다시말해 공수부대까지 포함한 대한민국 군의 실세가 전두환이다..라는 인식이었으니까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가 등장했던것도 그렇게 어색한것은 아니지 않았을까요?

    신군부 = 공수부대 = 전두환...뭐 이런 공식이었으니까요..
  • 닛뽀리 2011/04/07 21:23 # 삭제 답글

    김대중씨는 당시 대권을 노리던 정치인 아니었습니까? 대권을 노리던 정치인의 입에서 타협,,혹은 비타협 운운하는 발언이 나오는것은 일상적인 겁니다.직간접적으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고 민주화일정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정도는 캐취하고 있었을테니까요...김대중씨의 그 발언때문에 ..광주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시는것은 아닐테지요.

    그리고 김대중씨가 나중에 무슨 반성문을 보냈다 ..라는것은 백범님이 올리신 스레의 내용과는 무관한거 아닙니까?
  • 백범 2011/04/07 21:25 #

    김대중 반성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앙망한 선처를 호소한 반성문 말입니다.

    그리고 광주폭동 직후 김대중은 왜 갑자기 전두환에게 반성문을 보낸 걸까요? 왜???
  • 백범 2011/04/07 21:57 #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미국출국건은 필요에 의해서 그렇다 쳐도, 다른 반성문들은 누가 쓰라고 압력넣은 사람도 없었거늘...
  • 닛뽀리 2011/04/07 22:17 # 삭제

    그러니까..그런 김대중씨의 행적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으시면 따로 그런 스레를 올리시는것이 좋지 않습니까?

    백범님이 올리신 스레의 내용 어디에도 김대중씨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갑자기 댓글을 통해서는 반성문 쓴 김대중은 나빠...나빠...라고만 반복하시면.....
  • 닛뽀리 2011/04/07 21:37 # 삭제 답글

    김대중 반성문 운운하면서..김대중씨를 까고 싶으면 그것에 적당한 스레를 올리시는것이 좋지 않을까요?
    백범님이 올리신 스레의 내용은 "전두환은 광주폭동을 모르고 있었다" 라는 제목이고..광주사태는 폭동이었고..유언비어에 현혹된 광주시민들의 폭동이었다..라는 내용인것 같은데 말입니다.

    광주폭동직후 김대중이 반성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무슨 반성문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으로 떠나기위해 전두환이한테 보낸 선처문을 말하는것이라면)
    엄격하게 말하면 김대중씨야 말로 사태의 전에 이미 기연행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수감중에 광주에서 그런일이 발생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나중에 알고는 통곡을 하였다..라는 말도 하였고.

    아무튼 제가 말하고 있는것은...
    광주사태는 폭동이 아니다...광주사태의 원인은 좌,우를 떠나서 ..18일 19일 공수부대에 의한 유혈강경진압에 그 원인이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라는것 정도 입니다.
  • 백범 2011/04/07 21:54 #

    그래... 그 사실을 알고 통곡한 인간이 전두환, 노태우한테 어떻게 용돈을 그리 쉽게 받아챙깁니까? 김대중이가 언제는 80년대였는데, 방송에 나와서 또 광주영령들이 나를 살려줬네 하고 생쇼하는 연설도 언제 한걸 봤습니다만... 말이 안됩니다. 그런 놈이 어떻게 시민들 피묻은 돈을 거리낌없이 받아챙길꼬?

    그리고 앙망한 선처는 그것 말고도 몇건 더 되거든요? 나도 직장인이오니, 떠먹여주기를 바라지만 마시고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전남대에서 18일 10시 20분에 있던 집단투석사건이 공수를 자극한 것이며, 시민군이 먼저 선제공격하여 독오르게 만든것은 어찌 빠뜨리십니까?
  • 닛뽀리 2011/04/07 21:54 # 삭제

    그러니까..그런 김대중씨의 행적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싶으시면 그런 스레를 올리시면 되는 겁니다.
    광주 사람들...금호가 아시아나 타낼때도 광주시민들 핏값으로 한건 잡았다..라고 다 비판했어요.

    김대중씨가 전두환이 노태우한테 자금받아 정치했다는 행적에 대해서 백범님이 심도있게 비판하시는 스레를 올리시면 됩니다.

    18일 전남대에서 학생들이 집단 투석하여 공수를 자극하였고..이것이 공수부대원들 독오르게 만들었고...그래서 광주사태가 발생하였고...그래서 광주사태는 폭동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 백범 2011/04/07 22:00 #

    경찰서를 습격하고, 병기고를 탈취하고, 아시아자동차 병참공장 털고, 교도소까지 습격하고...

    도청 지하실에는 화순탄광에서 탈취한 폭약을 매설해놓고...

    글쎄요. 광주폭동을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참 많아 보입니다.
  • 닛뽀리 2011/04/07 22:08 # 삭제

    맞습니다..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 탈취하여 무장하였고..군수공장 아시아자동차에서 장갑차 탈취하였고...화순 탄광에서 폭약 탈취하였어요. 교도소 습격은 조금 다른경우이겠지요...광주교도소는 담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담양으로 나가려는 무장시위대들과 광주를 고립시켰던 계엄군 세력간에 충돌이 불가피한 경우였으니까요..광주교도소를 둘러싼 충돌은 ..광주교도소 습격을 목적으로 한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튼...시민들이 무장을 한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하는것은 논의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시민들은 자위권의 차원이다..라는것이고...계엄군은 이것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다..라는것이고..
    그런데....시민들이 무장하고 계엄군은 21일 철수하고 말았지요.
    21일 이전의 상황과 ..21일 이후의 상황은 전혀 다른것이 되고 말았지요.

    광주사태에 있어서 가장 크게 논의가 되어야 할것이 바로 이겁니다.
    누가...무장을 선동하였는가 ..하는거 말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광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무장을 원했다...라는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조직적으로 무장을 선동한 세력들이 있겠지요.
    이것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점이 불행입니다.
  • 닛뽀리 2011/04/07 22:00 # 삭제 답글

    백범님께서...광주사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심도있는 의견을 이야기 하고 싶으시면 ...5월 21일 이전과 5월 21일 이후를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여러 자료들도 보시고..나름대로 평가를 해보시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백범님의 이런 스레의 내용이라면 ....지역적인 감정..광주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해보겠다는 의도이다..라고 오해를 받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 닛뽀리 2011/04/07 22:11 # 삭제 답글

    폭동이라고 하면 ...다수의 불법적인 무력행위에 의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어지럽혀져야 하는데.....광주에서의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어지럽혀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18일과 19일의 공수부대원들에 의해서 이니까....광주폭동이라고 이야기되어지면 그 폭동의 주체로 되는것이 우리 군이 되고 마는거 아닐까요?

  • 닛뽀리 2011/04/07 22:26 # 삭제 답글

    백범님께서...한가지 아셔야 될것이 뭐냐면...
    18일 19일 혹은 20일의 상황에 대해서 입니다.

    당시 금남로의 카톨릭센터에서 ..금남로의 상황을 목격하셨던 윤공희 대주교는 이렇게 증언을 하였어요

    " 만약 내게 총이 있다면 저 계엄군들을 모두 쏘아 죽이고 싶었다" 라고 말이지요.

    무엇이 윤공희 대주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수 있었던것인지....백범님께서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셔야 합니다.

    적어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18일 19일의 상황은 몇마디의 말로는 표현해내기 어렵습니다.

    당시 저는 공기 자체가 긴장감을 주는것이 어떤것인지를 통감하였습니다.
    골목길에서...계엄군에게 쫒기면서 ...공포에 떨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진압봉으로 맞아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도로위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것을 보면서도 누구 한사람 도와주러 다가갈수 없던 분위기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도대체 무엇이 당시의 공수부대원들로 하여금 그렇게 잔인할수 있게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알수가 없지만 말입니다.

  • 2011/10/06 15: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러버 2012/11/11 20:56 # 답글

    가장 중요한것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위해 만든 공수부대가 국민을 해한다는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이지요 칼을 안으로 굽힌 역사적으로 가장 어리석은 시기인것은 사실입니다.
  • 백범 2012/11/11 21:02 #

    잘못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공수부대 한테 먼저 투석을 한 것은 전남대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5.18 아침부터 병기고를 털고, 누군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온갖 유언비어들을 날조했지요.

    http://baekbeom.egloos.com/4204429

    공수부대는 커녕 계엄군이 조직되기도 전에 시민군 폭도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했고, 또 누군가 저런 유언비어들을 날조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조직이 나타나서 병기고를 탈취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중무장을 했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야 될까요?
  • 러버 2012/11/11 21:17 # 답글

    누가 먼저 잘못을 하였는지 진실을 가리자면 끝도 없을 겁니다....왜냐 타임머신을 타고 그 현장에 직접 있어보지 않는 이상은 백범님과저는 현실적으로 접한 것이 아닌 간접적으로 접했지 않습니까...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왜곡인지 우린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것이 사실입니다.

    중요한것은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 순간이 내부에서 우리끼리 충돌할수 밖에 없었던 그 현실이 안타깝고 어리석었던 역사의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전에 유혈사태를 왜 방치하였고 왜 잠입하여선동한는 간첩들을 미리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잡아내지 못했냐는 겁니다.

    백범님께서 또 댓글 써주시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길.... 더 얘기 하는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다른 글로 토론을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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