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지역감정과 관련이 없다. 박정희

박정희는 지역감정과 관련이 없다.

김영삼과 김대중 싸움이 박정희와 뭔상관???

네, 네... 김영삼은 군사독재자였습니다.

지역감정의 원인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제공한 것이며 박정희 하고는 무관하다.

지역감정은 민주당계 야당인 신민당의 당권을 놓고 김영삼 (PK)와 김대중(전남)의 싸움이 87년 11월 김대중의 평민당 창당을 전후로 틀에 잡혔을 뿐... 애초에 신민당 당권을 놓고 갈등의 싹이 보였지 박정희는 지역갈등을 부추기거나 배후조종을 한 적이 없다.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날조된 루머를 퍼트리는 자들이 자주 대는 자료가 바로 1971년 공화당의 국회의장 이효상의 찬조연설이다.

"이 고장은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지만 임금을 배출하지 못했는다. 자랑스런 신라의 임금님의 후예인 박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자."

http://weekly.hankooki.com/whan/200003/w20000315200642615226.htm

이효상의 연설을 근거로 댄다 라고 하지만, 이효상의 연설은 그 어디에도 지역감정을 부추긴 내용은 없다. 그러자 슨상님 추종자나 노빠들은 이효상이 "경상도 사람을 뽑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개밥의 도토리가 된다."라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고 허위 사실을 날조했다. 그 "경상도 사람을 뽑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개밥의 도토리가 된다."의 출처가 어디냐 라고 집요하게 따지자 그들이 댄건 겨우 문명자나 김삼웅의 책들...

그러나 그 책에도 이효상의 몇년 연설이나 칼럼, 기사에 그런 발언을 했다 라는 근거가 달려있지 않다.

더구나 63년과 67년의 대선에서 박정희는 야당으로부터 공산주의자 라는 사상공세를 당했고, 야당의 공세에 대한 반발로 해방정국과 6.25 전쟁 당시 좌익 학살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그것 외에 박정희는 주로 농촌 지역의 표심에 의존했다. 그런 박정희가 농촌지역 많고, 좌익 학살 사건이 있는 호남 지역의 표를 버리는 짓을 하려 했을까?

신라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이라는 것을 소재로 되려 유권자의 눈을 다른데로 돌리고 표심을 얻으려는 계획이 지역감정과 뭔상관??

야당의 당권을 놓고 부산 지역의 맹주인 김영삼과 전남 지역의 맹주인 김대중 간에 갈등이 벌어졌고 그게 확대 생산된 것이다. 1971년의 신민당 대선에서 김영삼은 패배를 시인하고 김대중을 도우러 유세를 다녔다. 그러나 그 뒤에 당권을 놓고 치고 박고 싸우고, 75년부터 김영삼의 신민당 총재 경선을 놓고 삐걱거렸다. 그보다 신민당의 당권을 장악하려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욕심이 서로 갈등의 원인이 됐다.

87년 9월에 통민당 경선, 10월 27일 직선제 개헌안 국민투표가 있었다. 그러나 9월 30일에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 협상은 결렬됐다.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image_story/vod/1365900_12449.html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589151

그리고 김대중은 10월 28일에 탈당한다.

http://book.naver.com/bookdb/text_view.nhn?bid=50662&dencrt=a6iPIgI%252B%252BGzOJiujWivVb%252BRyq1frxex2sXZAf8ZhPLE%253D

박정희가 이때까지 생존하였던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김영삼과 김대중의 야당 당권경쟁은 87년까지 계속됐고, 87년 9월에는 김대중, 김영삼간 경선, 후보단일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영남, 호남 지역감정의 틀이 잡혔다. 9월의 경선에 불복한 김대중은 11월에 평민당을 창당했다. 6.10 사태 이후 민간인 정권을 원했던 일부 식자층의 희망을 물건너가게 만든건 김영삼과 김대중의 적전 분열이고. 다된 밥에 표를 갈라서 노태우를 36%로 당선시키게 만들었다.

더구나 90년 김영삼이 3당 합당으로 노태우, 김종필과 통합해버리면서 본격 영남 vs 호남 의 구도가 확정되어 버린 것이지, 박정희 하고는 관련이 없다. 박정희가 1990년 까지 생존하고 있었던가?


박정희는 지역감정 조장과 무관하다. 70년대의 김영삼, 김대중 간에 신민당 당권을 차지하려는 갈등, 경쟁도 혹시 박정희가 프락치를 보내 조장했다 라고 한다면, 그런 능력과 수단을 갖춘 박정희가 어떻게 김영삼, 김대중에게 패할 수가 있었을까?

박정희는 김대중, 김영삼에게 한번씩 바가지를 썼다. 박정희가 야당에 프락치를 들여보내 유력 주자간 반목을 하고 조종을 할 정도면 어떻게 사실확인도 불가능한 동경의 납치사건이나 79년의 미국 언론에다 대고 한 개소리에 여지없이 당하느냐 말이다.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라는 사실은 사실무근의 날조일 뿐이다.

덧글

  • 퀸엘리자베스성경 2010/10/11 13:58 # 삭제 답글

    1970년대의 김대중은 김영삼과 당권 경쟁을 벌인 적이 없어요. 당시 김대중과 관련된 당권 경쟁 비슷한 사례를 굳이 찾는다면 2차 진산 파동을 들어야 할 텐데 이게 김영삼하고 뭔 상관?

    그 이후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김대중은 계속 망명, 구속, 연금 상태에 놓였는지라 정치생활 자체를 하기 힘들었고, 1979년 야당 총재 선거에서는 같은 호남 지역 출신인 이철승을 비판하고 김영삼을 지원하여 당선시켰는데 무슨 김영삼과의 당권 경쟁?
  • 강희대제 2010/10/13 19:43 #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후보지역에 따라 격심한 투표율 차이를 보였었음. imf가 한창이던 1998년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들이 쏟아져 나올 무렵에 나온 책인 -한국정치연구회 편, 『박정희를 넘어서』(서울: 푸른숲, 1998) - 라는 책만 봐도. 본격적인 지역감정은 1987년부터 표출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음. 책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색채가 짙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 강희대제 2010/10/13 19:33 # 답글

    실증적으로 따져볼 때 지역감정이 제대로 표출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7년 무렵. 투표율에서 김대중 / 김영삼으로 다시 영남 / 호남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정치적 갈등을 보였었음. 박정희가 지역감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박정희가 직접적으로 지역차별을 조장한게 문제가 아니라.. 지역구에서 홍보차원에서 지역차별적 문구를 사용해서 '간접적'으로 문제되는 것. 어쨌던 지역차별적 정치공세의 시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수도 있고..
  • 지역감정이라. 2010/10/14 02:22 # 삭제 답글

    위에 황당한분 있네요..79년에 이철승이 왜 나와요?
    71년 야당 1차경선에 1위 김영삼 2위 김대중, 3위 이철승으로 나오자..전라도의 김대중과 이철승이 힘을 합쳐서 김대중밀었고,그로인해 김대중이 김영삼 제치고 대선에 나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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