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은 대무신왕의 후손이다. 자료

광개토대왕은 대무신왕의 후손이다.

어떤 곳에서 본 글

삼국 사기를 맹신하는구만...

단재 신채호 조차 고구려 5대왕 태조왕이 대무신왕의 조카가 아니라 대무신왕으로부터 3세 라고 하여 대무신왕의 손자 라고 했고, 차대왕과 신대왕은 후한서를 인용해 태조왕의 서자(삼국사기의 김부식은 차대왕과 신대왕을 태조왕의 이복동생 이라는 허무맹랑한 기록을 남겼다. 단재 신채호는 태조왕의 서자들 중에 수성(차대왕), 백고(신대왕) 외에 인고 라는 한명의 서자를 더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인고 왕자는 삼국사기에는 없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제5편 제2장을 보면...

<제 2 장 太祖·次祖大 두 대왕의 文治
1. 太祖 · 次祖大 두 대왕의 世系의 잘못

왕조의 세계 (世系) 에 틀리고 안 틀린 것은 사학가가 아는 체할 것이 아니지만 , 고대사는 세대의 사실이 매양 왕조의 보첩(譜牒=족보) 에 딸려 전하므로 , 그 틀리고 안 틀림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

이제 먼저 태조왕 의 세계를 말하기로 한다 . 전사 (前史=삼국사기를 지칭) 에 태조왕을 유류왕 (儒留王) 의 아들인, 고추대가 (古鄒大加) 재사 (再思) 의 아들로 , 대주류왕의 조카라 했으나, 유류왕은 이미 말한 바 와 같이 연대가 줄어진 동안에 든 제왕이고 , 광개토경평안호태왕 (廣開土 境平安好太王) 의 16대 조상이 되니, 모본왕(募本王) 에게는 3대조가 될 것이요 , 태조왕에게는 4대조가 될 것이다 . 그러니 유류왕을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의 아버지로 한것은 잘못된 기록이 아니면 속인 기록이다 .

재사는 그 벼슬 이름이 고추가(古鄒加) 요 , 고추가는 곧 `고추가'를 이두자로 기록한 것이다 . `고주'는 묵은 뿌리(古根=옛 왕의 혈통, 뿌리 라는 뜻)란 뜻이요 (지금 속어에도 묵은 뿌리를 `고주박'이라 함 ) `가'는 신 (神) 의 씨란 뜻으로 , 당시 5 부 (部) 대신의 칭호가 된 것이니 , `고주가'는 당시 종친 대신의 벼슬 이름이다 (지금의 속어에도 먼 동족을 `고죽지 먼 등그러기 '라 함). 재사가 `고주가'의 벼슬을 가졌으므로 종친 대신임이 분명하다. 후한서나 삼국지에 , “처음에는 연나 (涓那) 는 왕 될 권리를 잃었으나 그 적통 (嫡統) 대인 (大人) 이 오히려 고추가라 일컬어 종묘 (宗廟) 를 세움을 얻었다 .”고 하였으나 연나는 서부 (西部) 의 이름이고, 계나 (桂那) 는 중부 (中部) 의 이름이니 ,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중부가 주가 되고 4 부가 이에 복속하였으므로 , 어느 임금 때에도 중부를 두어두고 서부인 연나 에서 왕이 나왔을 리가 없으니 , 이는 태조왕이 왕족이며 연나의 우두머리인 고추대가 재사의 아들로서 , 왕이 되고 모본왕의 태자가 계나를 차지하였던 `신한'의 아들로서 물러나 연나의 고추가가 되었음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

본기(삼국사기)에는 태조왕 이후에 다시 대주류왕의 후예로서 들어가 왕위를 이은 이가 없고 , 광개토경호태왕의 비에 대주류왕이 그 직조 (直祖=직계조상) 로 씌어 있으니 ,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가 대주류왕의 조카가 아니라 직계 3세손이 될 것이다. 차조대왕의 세계(차조대왕은 삼국사기에서는 차대왕) 이제 또 차조대왕 (次祖大王) 의 세계 (世系) 를 말하고자 한다 .

신라사람(김부식)이 쓴 전사 (前史) 에는 차조대왕은 재사의 아들이요 , 태조왕과 한 어머니 아우라 하였으나 태조왕 당시에 차조대왕은 왕자라 일컬었으니 이것도 잘못이다. 만일 차조대왕이 태조왕의 아우라면 왜 왕자라 썼고, 어찌 왕제 (王弟) 라 쓰지 아니하였는가 ?

현재의 왕의 아들은 아니지마는 전왕의 아들이므로 또한 왕자라 일컬었다면 모를까 그러나 재사가 왕이 된적은 없다. 재사가 왕의 아버지요 왕은 아니니 , 왕부 (王父) 의 아들도 왕자라 일컬은 사례가 있는가? 태조왕이 즉위할 때에 나이 겨우 7 살(에서 8 살)이요, 생모되는 태후가 섭정하였 으니, 이때에 재사가 생존해 있었을지라도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여자나 어린아이만도 못할 만큼 노쇠하여 7 살된 아들에게 왕위를 내 주고, 아내가 섭정함에 이른 것이다. 사실이 그럴것인데, 그 뒤에 어찌 다시 굳세어져서 아내에게서 아들 차조대왕과 신대왕 (新大王) 과 인고 (仁固) 의 3 형제를 낳을수 있었겠는가?

재사가 정치상에는 싫증이 났으나, 아들을 낳을 만한 생식력은 강하였다 하더라도 차조대왕은 태조대왕의 뒤를 이어 왕에 즉위할 때에 나이가 76 살이었으니, 태조 왕이 19 년이 그가 태어난 해요, 신대왕은 즉위할 때에 나이가 77 살이었으니 , 태조왕 37 년이 신대왕 백고가 세상에 태어난 해다.

태조왕 원년에 많이 늙은 재사가 19 년만에 또 차대왕을 낳고 그 뒤 또 20 년만에 신대왕을 낳았다 함이 어찌 사리에 맞는 말이랴?

이는 거짓이고 조작이다. 대개 후한서 등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차조대왕 · 신대왕과 인고 세 사람은 모두 태조 대왕의 첩이 낳은 서자이고 , 차조대왕에게 죽은 막근 (莫勤) 과 막덕 (莫德) 두 사람은 태조대왕의 적자이므로 , 신대왕과 인고가 비록 차조대왕 (왕자시대의) 의 전천 (專擅=왕위를 탐낸 짓)한 짓을 미워하였으나 , 초록 (草綠) 은 동색 (同色) 이라고, 왕위를 탐내는 이복형 차조대왕의 그 반역의 음모를 고발하지 않은 것이고, 차조대왕도 같은 심정으로, 그 즉위한 뒤에 막근 형제는 살해하였으나, 같은 서자인 신대왕과 인고는 그대로 둔 것이니 , 후한서에 차조대왕을 태조왕의 아들로 기록한 것이 진짜 실록 (實錄) 이요, 본기에 차조대왕을 태조대왕의 아우라고 한 것은 잘못된 기록이거나 혹은 거짓 기록이다 .

본기(本紀) 에 태조대왕의 소자 (小字) 를 어수 (於漱) 라 하고 이름을 궁 (宮) 이라 하였으나 , 어수는 이두문으로 `마스'라 읽을 것이고 , 궁 (宮) 이라는 뜻이다. 전자나 후자가 둘 다 태조왕의 이름이니 , 어수는 소자이고 , 궁은 이름이라고 나눌 것이 아니다 .

차조대왕의 이름은 수성 (遂成) 이니 수성으로 읽을 것인데 , 더러운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짚몽둥이' 를 가리키는 말이요 , 태조왕을 전사 ( 前史 ) 에는 시호라고 하였으나 고구려는 처음부터 시호법을 쓰지 아니하고 생사에 그 공적을 찬양하여 , '태조 (太祖) ' 혹은 `국조 (國祖)'라고 하는 존호 (尊號) 를 올렸으며 , 차조대왕은 그 공적이 태조왕 다음 간다는 뜻으로 올린 존호이다 .


단재 신채호의 해석이 아니다 라고 해도, 광개토대왕비에 대무신왕을 광개토대왕의 직계조상이라 해석했으니 분명 재사는 대무신왕의 후손이다. 그리고 모본왕을 대무신왕의 3대손으로 보고 태조왕을 4대손으로 봤으니, 분명 태조왕은 모본왕의 조카이며 재사는 모본왕의 형은 형이지만 이복형이고 정실 왕비의 자식이 아니었으니 첩의자식 서자라 왕위는 잇지 못한 것이다 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다늙어서 어린아이만도 못한 노인이 어떻게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도 19년 뒤에 둘째 아들을 낳고, 또 37년 뒤에 다른 아들을 더 두었을까? 차조대왕은 배다른 동생이라 쳐도 신대왕은 태조대왕이 5,6세에 왕이 되었으니 42세, 43세나 나이 차이가 난다. 이것 역시 신채호 단재가 지적한 바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1(1) 주몽왕 - 2(2) 유리왕 - 3(3) 대무신왕 - (4) 재사 - 6(5) 태조왕 - 7(6) 차대왕
...............................................................................................- 8(6) 신대왕 - 9(7) 고국천왕
..................................................................................................................- 10(7) 산상왕 - 11(8) 동천왕
............................................................- 5(4) 모본왕
.....................................- 4(3) 민중왕

11(8) 동천왕 - 12(9) 중천왕 - 13(10) 서천왕 - 14(11) 봉상왕
.......................... .................................- (11) 돌고 - 15 (12) 미천왕 - 16(13) 고국원왕 - 17(14) 소수림왕
............................................................................................................................- 18(14) 고국양왕 - 19(15) 광개토대왕
......................................- (10) 달가


19(15) 광개토대왕 - 20(16) 장수왕 - (17) 조다 - 21(18) 문자명왕 - 22(19) 안장왕
...............................................- (17) 승천 - (18) 승평
.........................................................................................- 23(19) 안원왕 - 24(20) 양원왕 - 25(21) 평원왕


25(21) 평원왕 - 26(22) 영양왕
....................- 27(22) 영류왕
....................- (22) 대양     -   28(23) 보장왕




ps : 재사를 대무신왕의 왕자로 놓고, 차대왕과 신대왕을 태조왕의 서자로 둬도 15대 손, 세대로 쓰면 16세 손이라는 답이 나온다. 13세손은 되기가 어렵다. 하물며 13,14세에 시집장가들어 아이를 낳는 조혼풍습의 시대에 그렇게 늦은 나이에 자손을 둘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김부식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므로 고구려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왜곡의도가 없다 라고 하더라도 소홀히 다룰 수도 있다.


덧글

  • 고작 2010/10/02 17:00 # 삭제 답글

    ......

    인용할 게 없어서 신죄호 따윌 인용하냐. 아호 닉 값을 하네.
  • 백범 2010/10/02 17:01 #

    정치인 신지호 하고 단재 신채호도 구별 못하다니... ㅋ

    혹시 신지호와 신채호와 신재효의 차이가 뭔지는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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