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위해서는 괜찮다 뮌주하운동솨

목적을 위해서는 괜찮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유언비어 날조도 괜찮다...



유언비어로 이룩한 민주화가 얼마나 갈까?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갸들이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고 했다는 유언비어로 민주화를 이룩했다라...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얘들이 민주화를 이룩했나? 공포정치를 이룩했나... 진짜 민주화가 달성될 때까지 80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건 애써 무시하려는군...

저인간도 결국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이런 종자 아니냐?

이런 것들이 입으로는 평화 민주 개혁 인권을 외치고 도덕성 검증을 노래부른다. 비열하고 불결한 위선자들...

덧글

  • Montcalm 2010/05/21 15:22 # 답글

    공포정치와 황제폐하의 제정이 민주주의 ? .. 그리고 그 제정후 부르봉가의 복귀가 민주주의 ? .. 개인적으로 좋게 쳐줘도 민주주의는 오를레앙가 혹은 제 2 제정 붕괴후에나 ... 어울리는 말인데
  • 백범 2010/05/21 15:25 #

    프랑스에 진정 민주주의가 들어선건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1872년이 아니던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서는 사람을 난도질한 죄로 수감된 흉악범까지 풀어줘버리는게 무슨 정당한 행위일것이며... 루이 16세도 아니고 15세의 첩인 뒤바리 부인까지 찾아내 목을 자르는 것이며...

    1793년 1년간 2500명을 단두대에 날려버리는게 민주주의... ㅋㅋㅋㅋㅋㅋㅋ
  • Montcalm 2010/05/21 15:28 #

    그러게말입니다 ...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한 이후에나 어울리는게 ... 민주주의 인데
  • 백범 2010/05/21 15:29 #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무슨짓을 해도 괜찮다?

    http://bsknight.egloos.com/2931400

    시체팔이도 괜찮다고 합리화시키는 어떤 얼간이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가본데,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무슨짓을 해도 괜찮다라...

    저런 부류들 평소에 도덕성 얼마나 따졌습니까?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이 감히 남의 도덕성을 운운할 자격은 되는지 말입니다.
  • 2010/05/21 15: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인민해방군 2010/05/21 17:27 # 답글

    그게 바로 좌빨들의 해묵은 수법
  • flower master 2010/05/21 20:39 #

    닉네임이 좌빨.
  • 인민해방군 2010/05/21 23:41 #

    시끄럽다... 니가 좌빨 아이가...
  • 에드워디안 2010/05/22 10:36 # 답글

    1875년 제3공화정 헌법이 시행된 후에도 한동안 왕당파가 득세하는 바람에 프랑스 정국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1890년대 드레퓌스사건을 계기로 공화파가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비로소 공화국 체제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만 잦은 내각 교체(2차대전 이전까지 4년 이상 재임한 수상이 없음)와 부패스캔들(파나마 사건과 스타비스키 사건 등), 정쟁은 프랑스 국민들의 공화국에 대한 지지를 크게 저하시켰죠. 2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점령으로 제3공화정이 붕괴되었을 때 슬퍼하는 국민이 거의 없었던 걸 보면, 그만큼 프랑스 정치가 개판이었다는 뜻이니...;;

    차라리 프랑스 혁명보단 영국의 점진적 개혁이나 독일의 관료체제를 본받는 게 훨씬 이롭다고 생각됩니다.
  • 백범 2010/05/22 11:51 #

    적어도 1888년까지는 샹보로 백작이라고...

    처형당한 루이 16세의 넷째 동생인 샤를 10세의 손자 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왕당파들 중에서도 합리주의자들은 왕으로 인정할테니 입헌군주제를 수용하는 절충안을 마련했지만 샹보로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샹보로는 왕이 되지 못하고 원한과 피해의식 속에 찌들다가 죽어갔죠.

    샹보로, 샹보르 라고 부르는데 실제 이름은 앙리 샤를 페르디냥... 앙리 샤를 페르디냥 마리에 드 아르토아...
  • 에드워디안 2010/05/22 12:59 # 답글

    보불전쟁 직후 샹보르 백작이 추대되어 부르봉 왕정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게 당시 프랑스 여론의 대세였습니다. 의회의 왕당파는 부르봉파와 오를레앙파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왕정복고를 위해 부르봉家의 샹보르 백작을 추대한다는 데 양측이 합의를 본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공화국 대통령인 막마옹이 왕당파였던 탓에 왕정복고는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국기제정과 관련된 협상에서 샹보르 백작은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는데, 바로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틴 것이었습니다. 왕당파 중에서도 오를레앙파는 물론 부르봉파의 일부도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백작을 설득했지만, 성격이 완고한 백작에게 그것은 끝내 먹혀들지 않았고, 결국 대다수 왕당파가 부르봉家 대신 오를레앙家의 파리 필리프 백작에게 기대를 걸어 샹보르 백작의 사후(부르봉家가 家格면에서 오를레앙家보다 상위였기 때문에) 왕정복고를 시행하기로 했죠.

    졸지에 버림(?) 받은 샹보르 백작은 오스트리아로 망명해 1883년에 죽었는데, 이를 기회로 프랑스 본국의 왕당파들이 왕정보고를 실행하려 했지만 그 땐 이미 여론이 공화국을 인정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이미 가망성이 없는 상황이었죠. 이후로도 불랑제 장군(보나파르트파) 같은 反공화파들이 프랑스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드레퓌스사건으로 공화파가 완벽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면서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에서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백범 2010/05/22 13:11 #

    샹보르에게 아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장자는 없었기에 루이필립의 손자인 파리백작을 후계자로 삼는다 는 조건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타협됐는데, 혁명 (귀족, 소시민, 하층민)을 상징하는 그 삼색기를 인정할수 없다고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저런데도 그 유언비어와 감옥습격으로 벌어진 1793년의 폭동으로 이룩한 민주화가 210년은 갔다고 구라를 치는 놈도 있군요. 별꼴이죠... ㅋㅋㅋㅋㅋㅋㅋ
  • 에드워디안 2010/05/22 13:34 #

    1793년(국왕 부처가 처형된 해)이 아니라 1789년에 혁명이 일어났는데... 정말 어떤 면에서 보면 프랑스 혁명은 폭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더군요.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왕정을 뒤집어버렸는데도, 오히려 훨씬 폭압적인 독재자들이 등장했죠. 물론 혁명 이전의 프랑스 사회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혁명 후에 벌어진 자코뱅파의 뻘짓크리들을 볼 때, 차라리 라파예트 후작같은 자유주의적 귀족들이 정국을 주도했으면 역사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백범 2010/05/22 13:41 #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성을 상실한 자들에겐 차라리 기요틴이나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이 적당한 대안이었던듯... 차라리 프랑스에 스원수 께서 강림하지 않은걸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 에드워디안 2010/05/22 14:06 #

    강철의 대원수가 프랑스에 강림했다면, 개구리들 정신개조가 가능했을지도...(응?)
  • 에드워디안 2010/05/22 14:10 # 답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것도 쿠데타나 다름없지만)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공통점이 있더군요. 특히 인물들에서... 루이 16세=니콜라이 2세, 로베스피에르=레닌, 나폴레옹=스탈린이라는 공식으로 보면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듯. 그러나 저들 중에서 가장 압권은 단연 '레서기장 각하'이시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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